산행일자 : 2015.05.24 570차(2015년 29차) 일요일
날 씨 : 남원 맑음 11.0 / 28.3 도
산행인원 : 20명
산행코스 : 당궁~광산골~심마니능선~중봉~묘향암~박영발비트~폭포수골~뱀사골~와운교
교 통 편 : 승용차
06:57 당궁계곡
07:30 광산골
10:11 심마니능선
11:15 심마니샘
11:50 중봉
12:24 묘향대
12:49 점심(1시간)
14:06 박영발비트
16:15 폭포수골,뱀사골 합수부
17:57 와운교
도상거리 13.5Km.
소요 시간 휴식 시간 포함 11시간.
산행 들머리인 달궁에서 '지리산 산길따라' 산악회 회원님들과 만나 산행을 시작했다.
지리산 맑은 물이 흐르는 달궁 계곡을 건너 광산 골 초입에 들어섰다.
싱그러운 숲에서 뿜어져 나오는 청정한 기운으로 온몸을 정화하며 광산 골
우골로 길을 잡았다.
깊어가는 5월의 지리산은 생동감이 넘친다.
계곡의 물소리에 힘이 느껴지고 활짝 핀 꽃잎이 아름답다
푸른 옷을 갈아입고 불어오는 바람결에 몸을 받긴 잎들은 한들한들 춤추며
일렁인다.
자연과 교감하며 반야중봉에 올라앉아 휴식했다.
실루엣처럼 밀려드는 능선을 바라보니 신선의 영역에 들어선 듯 편안하고
아늑했다.
이렇게 적당이 고단한 육체를 불어오는 바람결이 쓰다듬어 줄 때면 강한
행복감에 젖어들기도 한다.
중봉에서의 휴식을 뒤로하고 묘향 암으로 향했다.
사월초파일 행사로 오색연등이 앞마당 가득 달려있다.
부처님의 광명이 온 누리에 가득 하길 소원하며 폭포수 골로 하산 길을 잡았다.
시원스럽게 쏟아지는 작은 폭포들을 바라보며 하산하는 동안 가파르게 이어지는
된비탈 길의 고단함도 잊었다.
조선 노동당 전남도당위원장 박영발 비트에 도착하여 아픈 역사에 대한 흔적을
몸소 체험해 보기도 했다.
무거워진 마음을 활짝 핀 작약꽃잎이 위로해준다.
화창한 오월의 햇살만큼이나 포근한 지리산의 봄을 가슴에 품고 와운 교에 도착하여
산행을 종료했다.
일찍 하산한 회원님이 승용차를 가지고 마중 오는 바람에 반선까지 편안하게 이동했다.
▼ 당궁계곡을 건너 산행을 시작합니다.
▼ 광산골 초
▼ 후미 기다리며 에너지 보충합니다
▼ 싱그러운 광산골 풍경
▼ 앞서가는 산학동자님을 이유없이 불러 세워본다.
▼ 원시림에 생동감이 느껴집니다.
▼ 청정지역의 맑은 기운을 품어 봅니다.
▼ 졸졸졸 흐르는 계곡물소리도 청량하게 울려퍼진다.
▼ 광산골 계곡상류 풍경
▼ 햇살 가득품은 숲길을 따라 심마니능선으로 올라섭니다.
▼ 심마니능선에 올라서서 현재위치 확인해 봅니다.
▼ 천 고지가 넘는 곳에 솟아나는 심마니 샘
▼ 실루엣처럼 천왕봉이 밀려드네요.
▼ 함양 삼봉산과 백운산, 금대산이 보이네요.
▼ 주목나무 군락지
▼ 반야중봉에 오라섰습니다.
▼ 중봉에서 바라본 천왕봉
▼ 삼신봉과 남부능선
▼ 곰취나물이 있네요.
▼ 묘향암 앞마당에도 오색 연등이 가득 달려있네요.
▼ 묘향암 석간수
▼ 삼겹살구워 점심을 먹습니다.
▼ 다시 산행이 이어지고~
▼ 폭포수골로 하산 길을 잡습니다.
▼ 박영발비트
▼ 슬픈 역사의 현장에 발을 딛어봅니다.
▼ 산작약 꽃잎이 마음을 흔드네요.
▼ 폭포수골의 이름답게 작은 폭포들이 시원스럽게 쏟아지고 있다.
▼ 된삐탈길이 이어집니다.
▼ 사진으로 표현 할 수 없는 청정한 기운이 가득했답니다.
▼ 다정한 벗처럼 나란히 쏟아지는 쌍폭
▼ 하산 길에 휴식하며 폼 한 번 잡아 보았답니다.
▼ 시원한 물줄기가 하산 길의 피로를 풀어주네요.
▼ 하얗게 핀 함박꽃이 나그네의 걸음을 붙잡네요.
▼ 폭포수골과 뱀사골 합수점
▼ 뱀사골 주 등로에 합류합니다. (50m 하산하면 유유교에 도착합니다.)
▼ 에매랄드빛 보석을 닮은 간장소
▼ 뱀사골 풍경
▼ 병풍소
▼ 뱀사골의 오월
▼ 와운교, 하산종료 (승용차로 반선까지 이동)
박영발은 누구 인가~?
경북 봉화군 출신이다.
1930년대에 봉화 지역을 중심으로 한 좌익 항일 운동에 뛰어들었다.
이후 1940년대에는 만주에서 항일 운동을 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 과정에서 경찰에 체포되었을 때 고문을 받아 1945년 경에는 한쪽 다리를 절고 있었다.
적색노조 운동을 벌이면서 토목노동자 일하던 중 1945년에 태평양 전쟁이 종전되었다.
미군정 초기에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에서 토목노조위원장을 맡았고, 집행위원도 겸임했다.
1946년에는 남조선로동당을 창당하여 간부가 되었다.
1947년 경에 월북하였고, 박헌영의 추천으로 모스크바의 동방노력자공산대학에도 유학했다.
1950년 한국전쟁시 인민군이 낙동강까지 남하했을때 결성된 조선로동당 전남도당 위원장에 올랐다.
그러나 전세가 역전되어 인민군이 후퇴하자 전남지역에 남아 김선우와 함께 유격전을 지휘 하여다.
박영발은 한국전쟁 중 지리산을 거점으로 한 이현상의 남부군 활동을 견제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1951년에 남부군의 이현상이 제안한 유격대 개편안을 방준표와 함께 반대하는 등
이현상과는 대치되는 지점에 있었다는 증언이 있다.
1953년에 이현상이 사망하기 직전 제5지구당이 해체될 때도 이현상을 비판하여
평당원으로 강등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54년 1월 중순에 지리산 뱀사골에서 토벌대와 전투를 벌이다가 자살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1월에 자살한 것이 아니라 2월 말에 토벌대에 의해 사살되었다는 주장도 있는 등
정확한 사망 시점과 경위에 대해서는 증언이 다소 엇갈린다.
토벌대를 이끈 백선엽은 공산주의 사상에 대한 정신력이 대단했던 인물로 평가한 바 있다.
2003년 평양 애국렬사릉에 이현상, 방준표 등과 함께 박영발 가묘가 설치되어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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