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부지방산

범어사금정불교대학 가을문화답사(칠불사~쌍계사~화엄사)

백천(栢泉) 2024. 10. 13. 07:34

일       자 : 2024.10.12 (음력 9/10) 1335차 (2024년 55차) 토요일.

날       씨 : 하동, 구레 맑음  12 / 25도

 

- 관광버스 창 너머로 바라본 섬진강. 다리 건너면 전남 광양, 경남 하동.

 

 대한불교조계종 13교구 본사인 쌍계사(雙磎寺)의 말사이다.

칠불선원(七佛禪院) 또는 칠불사라고도 한다. 이 절의 창건에는 몇 가지 설화가 전하

고 있다.

 

 지리산 반야봉 해발 약 800m 고지에 자리 잡은 칠불사는 삼국 시대 초기 김해 지방을

중심으로 낙동강 유역에 있었던 가락국의 태조이자 오늘날 김해 김씨의 시조가 되는

김수로왕의 일곱 왕자가 이곳에 와서 수도를 한 후 모두 성불하였다고 해서 칠불사라

불리고 있다. 가야 불교의 중심 사찰로 성장한 칠불사는 1,100여 년 전 신라 효공왕 때

한 번 불을 때면 온기가 100일은 간다는 아자방(亞字房)을 지음으로써 더욱 유명해졌

으나 전란으로 소실된 것을 1978년 제월당 통광 대선사가 다시 지었다.  - 퍼온글 -

 

▼ 칠불암 사적비와 부도탑. 

▼ 선다원.

일주문 지나 여기까지 대형 버스가 올라왔다.

▼ 보설루 현판(동국제일선원).

▼ 칠불사에서 조망되는 황장산 군.

▼ 아자방(亞字房)은 스님들이 참선수행하는 선방이다.

재학생들만 들어가서 스님 법문을 듣는다.

- 아자방은 지은 지 1000년이 넘은 전통 난방 시설로 전설의 구들로 불린다.

한 번 불을 지피면 구들방 온기가 49일이나 가시지 않는다고 하는 칠불사(七佛寺) 아자방(亞字房)은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144호로 하동군 화개면 법왕리에 있습니다. 세계건축대사전에도 기록될 정도로 독특한 양식을 하고 있는데 신라 효공왕(孝恭王, 897~911) 때 담공선사(曇空禪師)가 길이 8m의 이중 온돌방을 만든 것입니다. 그 방모양이 자와 같아 아자방이라고 이름 붙었죠. 온돌방의 대표격으로 오늘날에도 보러 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반세기 전만 해도 흔하던 구들 깔린 방이 이제는 일부러 가서 보지 않으면 볼 수 없는 희귀한 유산이 되어 안타깝습니다. - 퍼온 글 -

▼ 아자방 아궁이.

▼ 대웅전, 문수전.

 

▼ 설선당.

▼ 원음각, 보설루.

▼ 공양간에서 바라본 풍경.

▼ 절집 전경.

▼ 아자방 & 대웅전 앞에서 기념 촬영.

▼ 공양간.

▼ 잘 꾸며놓은 연못.

▼유천수

유천수란 젖과 같이 뽀얀 물을 말한다. 유천이 나타나는 것은 두 가지 경우이다.

첫째는 수행자가 수행을 잘하고 공덕을 쌓으면 그 공력으로 나타나고, 둘째는

사찰인 경우 그 사찰이 발전 융창할 운이 돌아올 때 유천수가 나타난다고 한다.

- 퍼온 글 -

▼ 칠불사 전경.

▼ 운상선원 가는길 풍경.

 출입통제구간이라 가볼까, 말까 망설이다, 아자방 입구에 통제 출입문을

재학생들은 허락받고 통과했기에 올라가 봅니다.

운상선원

운상원(雲上院)은 큰 절에서 서북쪽으로 약 300m 위에 위치해 있다.

운상원이라는 이름은 구름 위의 집이라는 뜻이다. 칠불사 골짜기가

구름 바다가 될 때 이 곳은 구름 위에 드러나 있는 까닭에 운상원(

上院)이라고 했다- 퍼온글 -

 

▼ 운상선원    &    스님 요사채 같다. 

▼ 운상선원과 요사채 전경. 

▼ 산죽 군락지.

▼ 조용히 살짝 둘러보고 갑니다.

▼ 지난날에 왔다가 두 번째로 둘러보고 쌍계사로 떠납니다.

▼ 칠불사 원지.

가락국 김수로왕과 허왕후는 일곱 왕자가 성불하여 속세와 인연을 끊고 세상에 나오지 않게 되자 왕자들을 만나 보기 위해 지리산으로 찾아갔다. 그러나 불법이 엄하여 허왕후조차 여자라고 하여 선원에 들어갈 수 없었다.

여러 날을 선원 밖에서 안타깝게 기다리던 허왕후는 참다못해 성불한 아들들의 이름을 차례로 불렀다. 그러나 “우리 칠형제는 이미 출가 성불하여 속인을 대할 수 없으니 돌아가시라.”는 음성만 들렸다. 허왕후는 아들들의 음성만 들어도 반가웠으나 얼굴을 한 번만 보고 싶다고 간청하였다.

아들들은 “그러면 선원 앞 연못가로 오라.”고 했다. 허왕후가 연못 주변을 아무리 두리번거려도 아들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실망한 허왕후가 발길을 돌리려다 연못 속을 들여다보니 일곱 왕자가 합장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감동한 것도 잠깐, 한 번 사라진 일곱 왕자의 성불한 모습은 그 뒤로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이 연못을 그 뒤로 영지라고 불렀다.

 

일주문에서 조금 올라가면 있는데, 관광버스로 위쪽 주차장까지 이동했기에

아쉽게도 원지를 보지를 못했다.

영지 용왕제 & 방생 하는 풍경.   펴온 그림으로 아쉬움을 달래봅니다. 

▼ 관광버스 타고 이동중에 촬영한, 지리산칠불사 일주문.

 

▼ 쌍계사 입구 화개천.

▼ 템플스테이 입구까지 관광버스가 올라왔다.

▼ 일주문 입구부터 문화재 보수공사가 진행 중이라 포장길 따라 바로

대웅전으로 올라갑니다.

▼ 하동 쌍계사 팔각구층석탑.

▼ 성보박물관.

▼ 성보 박물관에서 살짝 보이는 방장실.

▼ 화개천으로 흘러 가는 쌍계사 계곡.

▼ 불일폭포 2.4Km.

지난날에 청학동에서 삼신봉, 쌍계사로 산행을 한 적이 있다.

▼ 금당으로 올라갑니다.

▼ 금당 직전에 산길 이정표 안내판.

▼ 청학루.

▼ 팔상전.

▼ 팔상전에서 금당 오름길 풍경.

▼ 금당 & 육조정상(두상) 탑전.

▼ 금당 주변에 전각, 서방장 & 동방장.

▼ 금당에서 멀리 희미하게 조망되는 풍경, 지리산 남부 능선 인가 싶다.

▼ 금당 주변 전각 전경.

▼ 대웅전. &  목조석가여래삼불상 및 사보살입상.

▼ 대웅전 앞에 문화재 보수공사가 한창이네요.

▼ 금강계단, 부처님의 진신사리탑.

▼ 석등(경상남도 유행문화유산).

▼ 쌍계사 석탑(아내판이 없다).

▼ 마애여래좌상.

▼ 쌍계사 경내에는 군데군데 복원(정비) 작업을 하고 있다.

진갑선사 탑비 보수 작업.

점심 공양 후 템플스테이 가는 길에 다리 건너가며 바라본 계곡 풍경.

▼ 템플스테이(문화 예술관)으로 갑니다. 

▼ 천왕문.

▼ 금강문.

▼ 일주문(삼신산쌍계사).

▼ 방장실 가는 길.

▼ 여기서 돌아서 나갑니다.

▼ 절집 돌아보고 구례 화엄사로 떠납니다.

 

 

▼ 화엄사 가는 길에 차창 밖으로 보이는 황금 들녘. 

 

- 구례 화엄사.

 

▼ 일주문.(지리산화엄사).

▼ 돌항아리.

▼ 벽암국일대선사비.

▼ 금강문. 

▼ 천왕문. 

▼ 대웅전 가는 길에 종각, 보제루, 문고루.

▼ 대웅전.

▼ 구례 화엄사 서 오층석탑(보물 제 133호). &  구례 화엄사 동 오층석탑(보물 제 132호).

▼ 각황전.

▼ 각황전 내부.

▼ 구례 화엄사 각황전 앞 석등(국보 제12호).

▼ 구례 화엄사 원통전 앞 사자탑(국보 제300호).

▼ 원통전, 영전, 대웅전.

▼ 나한전 앞 천년기념물 지정된  300년이 넘은 화엄사 홍매화.

▼ 돌계단 올라 적멸보궁으로 가봅니다.

▼ 견성전(적멸보궁).

▼ 삼성각.

▼ 3층 4사자 사리석탑(국보 제35호).

▼ 노고단 능선이 멋지게 조망이 된다.

▼ 화엄사 내원암 조망.

▼ 내려다본 각황전, 대웅전.

▼ 구층암 가는 길.

▼ 구층암, 삼층 석탑.

▼ 천불전 위쪽에 요사채.

▼ 탱자.

▼ 천불보전.

▼ 모가나무 기둥, 다듬지 않고 자연스럽게 그대로 섰다.

▼ 구층암 둘러보고 돌아 나왔습니다.

▼ 지리산 노고단 고개 가는 산문.

▼ 화엄사 어머니의 길(산책 길)

▼ 화엄사 끝으로 오늘 일정 마치고 떠납니다.

▼ 화개장터에서 재첩정식으로 저녁 먹고 갑니다.

▼ 장터도 둘러봅니다.

▼ 은어 & 참게.

 

 

-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의 의미.

 

나무는 인도어로돌아가서 의지한다.’라는 뜻이다.

따라서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은

아미타불과 관세음보살에게 돌아가 의지한다.’라는 뜻이 된다.

아미타불은 서방 정토(西方淨土)극락세계를 관장하는 부처로서

중생의 지위 고하를 따지지 않고 자신을 부르는 사람을 구제해 준다.

아미타불은 대승 불교에서 가장 중요한 부처 가운데 하나이자

정토 신앙의 토대가 되고 있다.

 

관세음보살은 사람들의 고통을 자비로써 모두 거두어 가는 어머니와 같은 보살이다.

관세음보살에 관한 탱화나 조각을 보면 이마 한가운데에 사람의 얼굴이 그려진 것을 찾아볼 수 있다.

 

관세음보살은 아미타불과 같이 끝없이 중생의 고통을 덜어 주고

소원을 성취해 주고자 아미타불을 스승으로 삼고,그 얼굴을 자신의 머리에 두고 모신다.

그래서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이라고 한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각각의 의미를 먼저 살펴볼까요?

나무입니다.

나무는 산스크리트어

'Namas'(Namo)의 음역으로,

'나모', '납막',낭모'라고도 하며,

의역하여'귀의', '귀명', '귀경', '구아'하다 입니다.

한자로는'남무'라고 표기합니다.

중국에서는'나모'라고 발음하고

우리나라에서는'나무'라고 발음합니다.

의미는'돌아가서 의지한다',

'중생이 부처님께로 진심으로 돌아가 의지한다'입니다.

 

아미타불은'무한한 수명'을 의미하는

산스크리트어'Amitayus' (Amitabha)의 음역입니다.

'한량없는 수명을 지닌 부처'라는 의미의'무량수불'또는'한량없는 빛의 부처'라는 의미의'무량광불'이라고 합니다.

,시간(수명)과 공간()을 초월하신 부처를 의미합니다.

서방정토에 머물면서 중생을 극락으로 이끈다는 부처입니다.

관세음보살은 산스크리트어'Avalokiteshvara'의 아바로키타(Avalokita관하다) +이슈와라(ishvara,신 또는 자재천)합성어의 의역입니다.

관자재,광세음,관세자재라고도 하며,줄여서 관음이라고도 합니다.

대자대비를 근본 서원으로 하는 보살로,의미는'세상의 소리를 관하는 보살'입니다.

 

그러면 왜 나무아미타불과 관세음보살을 함께 부를까요?

관세음보살은 아미타불의 화신으로서 이 세상에 나타나며,

이 때문에 쓰고 있는 보관에 아미타불의 모습이 새겨져 있습니다.

관세음보살은 죽은 이들을 아미타불이 계시는 서방정토로 인도합니다.

석가모니불의 입적 이후부터 미래불인 미륵불이 나타날 때까지

세상을 지키고 중생의 근기에 맞추어33가지의 몸으로 세상에 나타납니다.

관세음보살은 세상의 모든 중생이 해탈할 때까지 성불하지 않겠다는

보살의 서원을 가장 잘 보여주는 대자대비의 보살입니다.

 

그렇다면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아미타불과 관세음보살에게 돌아가 의지하는 것입니다.

'무량수,무량광으로 오신 한량없는 아미타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이 세상 중생들의 고통 받는 소리를 다 관찰하여 보시는 관세음 보살님께 귀의합니다'

우리 마음을 깨닫고 나면 무한한 생명이며 빛이자 무한한 자비가 보입니다.

 

내 마음의 아미타와 관세음을 찾으면 우리 모두는 불보살이 아닐까요?

이것을 늘 깨우치게 하는 불교의 염불 방편이"나무 아미타불 관세음보살"입니다.

(퍼온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