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근교산

천성산(368.9봉~용소골~숨은직하폭포)

백천(栢泉) 2019. 7. 4. 07:06

산행일자 : 2019.07.03 음력 6/1 916차(2019년 65차) 수요일 

날       씨 : 양산 흐림 20.1 / 29.7 도

산행인원 : 홀로 

산행코스 : 신전~용소마을~368.9봉~용소골~용소폭포~직하폭포~용소마을  

교  통 편 : 대중교통 부산 명륜동 지하철역에서 양산행 버스 11, 12번. 이용

 

12:18 신전버스정류장

12:37 용소마을

13:48 368.9봉

14:01 철탑

14:14 임도갈림길사거리이정표

14:50 계곡상류합수점

16:00 용소폭포

16:40 직하폭포상단

16:56 외딴집

17:27 신전버스정류장

도상거리 8.25Km.

소요시간 휴식 포함 5시간 08분.

▼ 산행 들머리. 신전 버스정류장 하차 후 경부고속도로 교각 밑으로 진행합니다.

▼ 담쟁이덩쿨 휘감은 좁은 골목길이 정겹습니다.

▼ 갈림 길에서 좌측으로 갑니다. 좌측은 능선, 우측은 용소골 방향입니다.

▼ 능선 초입에서 잡목이 우거진 길로 접어 들어 가 봅니다.

▼ 능선 길에 합류.

▼ 용소골 갈림 길.

▼ 368.9봉 삼각점.

▼ 언제 걸어도 정겨운 능선 길이 나그네의 마음까지 편안하게 해줍니다.

▼ 능선에 철 탑.

▼ 산 길과, 임도 갈림 길.

▼ 임도에서 바라본 527.1봉

▼ 임도 갈림길 사거리 이정표. 용소마을 방향으로 갑니다.

▼ 용소골 계곡 상류 합수 점.

▼ 3일 전에 풍부했던 계곡 물이 이렇게 줄어있네요.

▼ 노란 원추리 꽃이 사랑스럽게 피어있네요.

▼ 작은 폭포에서 쉬었다갑니다.

시원한 계곡물에 알탕의 여유도 즐겨봅니다.

▼ 용소폭포 상단에 멋진 와폭.

▼ 용소폭포 상단 풍경.

▼ 만수동 각자.

▼ 용소폭포. 숨은 양산 찾기(47) 우리고을 옛노래 만수동폭포(晩搜洞瀑布) 하단에 글 참고.

▼ 추억하나 담아갑니다.

▼ 계곡 따라 내려갑니다.

▼ 장맛비로 계곡이 깨끗해졌습니다.

▼ 마지막 물 건너는 곳.

▼ 계곡 따라 계속 내려갑니다. 계곡수가 자갈 밑으로 스며들고 있네요.

▼ 사방 댐 바닥에서 계곡 물이 흘러 나옵니다.

▼ 용소마을에 숨은 직하폭포 상단에서 바라본 풍경.

▼ 숨은폭포(직하 폭포).

▼ 무분별한 피서객들을 막기 위한 팬스가 설치되어 있다.

▼ 이런 몰상식한 행동의 사람들로 인해 천해의 자연이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 이정도면 다시는 안올생각이겠지요?

▼ 폭포에서 빠져 나왔습니다. 경작지에 독가.

예쁘게 피어 있는 타래난초.

▼ 복분자 나무를 베어 낸다네요.

▼ 석잠풀.

▼ 개망초

▼ 오늘도 견공은 본연에 임무를 다하기위해 나그네를 향해 힘차게 짓어된다.

▼ 당아욱꽃.

▼ 잘 가꾸어 놓은 텃 밭에 토마토, 고추, 옥수수...

▼ 용소마을 풍경.

▼ 신전 버스 정류장에서 바라본 용소마을 입석.

 

 

■ 숨은 양산 찾기(47) - 우리고을 옛노래 만수동폭포(晩搜洞瀑布)

 

“그늘 깊어 꽃과 나무, 일찍 봄 맞기 어렵겠네”

 

아껴서 깊이 숨겨둔 명구가 주인을 기다렸는데/ 그늘 깊어 꽃과 나무, 일찍 봄 맞기 어렵겠네./ 제군들아, 늦게 찾아 왔다 말하지 말라./ 차지할 때 그 때가 좋은 인연이니라.[ 秘名區待主深(간비명구대주심) 深陰花木早難春(심음화목조난춘) 諸君莫道窮搜晩(제군막도궁수만) 点得其時是好 (점득기시시호인)]

 

 박천수가 쓴 ‘만수동 원운에 차운하여[次晩搜洞原韻]- 골짝의 주인은 교환 김문범이다[洞主金敎桓文範]’라는 제하의 두 수 가운데 첫째 수다.

 

 박천수(朴天銖. 1869~1951)의 자는 인석(仁錫)이고 호는 묵헌(默軒)이다. 서울대 총장을 역임한 박봉식(朴奉植) 씨의 할아버지다. 고종(高宗) 때 음관(蔭官: 과거를 거치지 아니하고 조상의 공덕에 의하여 맡은 벼슬)으로서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 從五品官)에 제수되었으며, 삼성동 영동마을에서 살았다. 도량이 넓고 천성이 따뜻하고 부드러웠으며, 일찍부터 시문(詩文)으로 명성이 높았다. 세거지에 육영정사(育英精舍)라는 서당을 세워 향리의 학동들을 가르쳤고, 고을의 친구들과 경현당(景賢堂)을 창건하였으며, 고종 5년(1868)에 서원 철폐령에 의해 훼철된 소노서원(小魯書院)을 복원할 것을 주장하였다. 유고(遺稿)에 ‘묵헌유고’가 있고, 산막 호계산 덕곡에 묻혀있다.

 

 하북면 용연리 용소마을 뒤편 계곡을 따라 약 1㎞ 정도를 오르다보면 높이 20m 정도의 아름다운 사폭(斜瀑)이 나타나는데 이것이 만수동폭포다. 달리 만수대라고도 불러왔으며, 폭포 바로 위 바위에는 ‘만수동’이라는 각자도 있다. 아마도 이곳을 즐겨 찾았던 초은(樵隱) 김교환(金敎桓)이 새겼으리라. 이 폭포 위에 상삼리의 만석 부자였던 초은이 1936년경에 대를 축조했다고 한다. 그러나 필자가 몇 번에 걸쳐 답사한 바에 의하면, 폭포의 위쪽에 낮게 돌로 축대를 쌓아 둔 것 외에는 달리 뚜렷한 유지를 찾지 못했다. 천성산의 정기를 받은 산자수명(山紫水明)한 이곳에서 낙수의 물보라로 목을 추겨가면서 득음(得音)을 위하여 시조창객(時調唱客)이 모여든 곳으로도 유명했다 하는데 그 흔적을 볼 수 없어 유감이다. 교환은 이곳을 소재로 두 수의 절구를 남겼는데, 그 원운은 다음과 같다.

 

 “하늘이 아끼고 땅이 감춰 둔 곳, 묻는 이조차 없는데/ 천지의 원기 모두 겪은 것, 일만 팔천 년이라./ 늦게 찾아내었다 말하지 말라./ 우연히 나를 만나 좋은 인연 이루리.[天 地秘問無人(천간지비문무인) 閱盡鴻 萬八春(열진홍몽만팔춘) 莫道窮搜然後得(막도궁수연후득) 偶因樵者湊良 (우인초자주량인)]”

 2행의 ‘萬八春’은 중국 전설상의 제왕인 삼황(三皇)이 각기 살았던 햇수로서 여기서는 ‘아주 오랜 세월’ 정도로 씌어졌다.

 

 만수동 폭포 외에도 용소마을의 동편 400m 지점에는 10여m의 직하(直下) 폭포가 있다. 이름하여 용소폭포다. 물보라를 뿜으며 떨어지는 폭포수의 우뢰 같은 소리는 한 여름의 더위를 식혀 주고도 남으며, 햇살이 비치면 무지개가 물보라 속에서 찬란히 빛난단다. 이 폭포는 숨어 있는 데다 그리 알려지지 않아 붐비지 않는 곳이지만 폭포의 규모는 가히 경탄할만하다. 전해 오는 말에 따르면 옛날에는 이곳에다 명주실을 풀어 넣으면 그 끝이 우틀소를 통하여 울산의 방어진 앞 바다까지 간다고 하며, 절벽 아래 굴속에 용이 살면서 우틀소까지 왕래했다고 한다. 참고로 우틀소는 용소마을 입구의 소(沼)로서 무척 깊어서 ‘위태로운 소’라는 말이 방언으로 ‘우트러운 소’로, 다시 우틀소가 되었다고 한다.

 

 용소폭포가 잘 보이지 않게 숨어있으면서 제법 큰 소리를 내면서 물줄기가 떨어지기에 수줍어하면서도 씩씩한 산골소년이 연상된다면, 만수동폭포는 비스듬한 바위 면을 타고 흘러내리는 게 한 많은 여인의 하염없는 눈물 같은 느낌이 든다.

 

 이 두 폭포 사이의 계곡 바닥에 넓은 오석이 깔려 있는데 이 오석 위에 20여 개 정도의 아기 주먹에서 어른 주먹보다 큰 새알이 박혔다 빠져나간 것 같은 흔적이 있다. 이것이 용소에서 용이 걸어 올라와서 남긴 발자국이라 하며, 이 용은 만수동 폭포를 따라 승천했다고 한다. 답사하는 것은 좋은데, 이 계곡물이 주민의 식수원임을 염두에 뒀으면 좋겠다. 엄원대(양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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